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뮌헨 협정 (문단 편집) === 군사 ===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싸우려는 의지도 없었다.''' 심지어 뮌헨 협정 1년 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도 전쟁 준비가 불완전한 상태였다.[* 근데 황당한건 뮌헨 협정 시점에서 영-프가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독일이 '''영-프 이상으로 전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전포고]]만 하고 약 8개월 간 전쟁 준비 겸 눈치도 볼 겸 [[가짜 전쟁]] 사건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당시 영프 양국은 [[대공황]]의 늪에서 막 빠져나오던 참으로 군사력 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프 양국은 독일 측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이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작품으로, 영프는 독일의 군사 [[열병식]]과 선전 영화 등에 통째로 낚여서 독일의 군사력을 실제 이상으로 보고 두려워했다. 더욱이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군사 동맹의 의무를 지켜야 할 프랑스는 위의 문제로 영국의 참여가 없는 대독일 전쟁의 단독 개전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영국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여기에 [[폴란드]]와 [[헝가리]]도 이 기회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얻기 위해 독일에 동조했다. 특히 폴란드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프랑스의 군사동맹국으로서 유사시 동부전선에서 독일과 싸워야 하는 나라였으나 체코로부터 테셴을 빼앗겠다는 욕심에 체코슬로바키아 압박에 합류하여 프랑스의 전쟁 계획을 망가뜨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프랑스는 독일뿐만 아니라 당시 막강한 것으로 평가받던 폴란드군까지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력한 [[폴란드군]] 이미지는 18년 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폴란드는 이후 경제력 등의 문제로 인해 시대의 급격한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으며 1934년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으로 프랑스는 폴란드가 독일의 동맹국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했다. 하지만 이 건에 관해서는 폴란드도 할 말이 있는 것이, 1925년 로카르노 조약을 체결하여 독일에게 동부 국경을 변경할 권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은 프랑스였다. 폴란드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유화적으로 나오자 서유럽으로부터 어떤 효과적인 보조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되었고 결국 나름의 자구책으로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폴란드는 2년 전 소련과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즉, 폴란드가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돕고 싶어도 '''그 놈의 불가침조약 때문에 독일을 견제할 수 없었다.''' 물론 그걸로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에 동참한 걸 정당화할 순 없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